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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와 쥐]

라일락일락 2022. 2. 15. 00:34



아주 먼 옛날, 벼가 푹 익어 고개를 숙이고 노오란 들판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계절의 세상에서

작은 두더지 한 마리가 태어났어요.



작은 두더지에게 어른 두더지들은 항상 말했답니다.


"너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땅을 파서 먹을 것을 찾아야 한단다."

"그리고 땅 밖은 너무 위험하니까, 땅 속에만 있어야 한다!"





작은 두더지는 그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어른의 말씀은 잘 들어야 하니까요.


작은 두더지는 열심히 어른들을 도와 땅을 팠답니다.


하지만 작은 두더지는 조금씩 지쳐갔어요.


작은 두더지는 너무 작아서 아직은 힘이 모자랐거든요.


작은 두더지는 땅을 파던 도중 힘들어져 털썩 쓰러지고 말았어요.


"지루해. 재미없어. 힘들어."


작은 두더지는 이제 땅을 그만 파고 집으로 돌아 가기로 했어요.


쿵! 쿵쿵!

그 때, 집으로 돌아가려던 작은 두더지는 위에서 쿵쿵거리는 진동을 느꼈습니다.


"어라? 뭘까?"


호기심이 든 작은 두더지는 자신의 위의 흙을 파내었어요.

땅 위는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은 싹 잊어버리고요.


땅을 파내고 매일 지내던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순간, 작은 두더지아주 눈부신 빛과 마주했어요.

"으앗, 눈부셔!"


눈이 아파서 눈물까지 찔끔 나왔지만, 어째선지 작은 두더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예쁘다."


난생 처음으로 맞이한 은, 작은 두더지의 마음에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그 때였어요.

저 위의 을 계속 홀린 듯이 바라보던 작은 두더지의 몸이 갑작스럽게 위로 치솟았습니다.

"드디어 잡았다, 이 두더지 녀석!"


작은 두더지는 그제서야 아차! 싶었어요. 땅 위는 위험하다고 어른들이 그렇게 말했는데!


하지만 이미 단단히 잡혀버린 작은 두더지는 벗어날 수가 없었답니다.

"이 두더지 놈. 매일 같이 밭을 망쳐 놓고 말이야! 네놈 때문에 농사가 망해버렸다고!"



작은 두더지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인간 농부다!'



어른 두더지들이 하는 말 중에는 인간, 그 중에서도 농부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인간 농부는 우리들을 싫어한단다. 그들에게 잡히면 잡아 먹힌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러니까 그런 인간들이 사는 땅 위에는 절대 올라가서는 안 된단다!



작은 두더지는 아찔해졌습니다. 이대로 잡아 먹히기라도 하면 어떡하죠?

"혼쭐을 내주마."


인간 농부는 씩씩대며 작은 두더지를 감옥에 가뒀습니다. 이러다 꼼짝 없이 잡아 먹히면 큰일이에요.


농부가 걸어가는 소리 사이에 짤그랑,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작은 두더지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었지요.



땅 밑과는 달리 땅 위는 으로 가득했지만 작은 두더지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눈 아파...'


작은 두더지는 딱딱한 감옥의 바닥을 느꼈습니다.

'차갑고 딱딱해. 이게 감옥인가?'


감옥은 너무 단단해서 땅을 파 도망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때였어요. 어딘가에서 조그마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진동이 바닥을 타고 전달 되었습니다.


"안녕, 두더지 친구!"

작은 두더지는 어리둥절해서 소리가 들리는 쪽을 쳐다보았어요.


"나는 쥐야. 작은 쥐. 반가워."



"아, 너 갇혀 있구나! 거기에서 나올 수 없는거지? 내가 도와줄게!"



작은 쥐는 어딘가로 달려가더니 무언가를 끌고 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걸로 잠긴 문을 열어줄게."


작은 두더지가 볼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칠칠맞은 농부가 떨어뜨리고 간 감옥의 열쇠였답니다.


작은 쥐는 열쇠를 이용해 자물쇠를 풀어냈고, 문을 열었습니다.


"자, 이제 나와! 근처에 떨어진 열쇠로 문을 열었어!"


작은 두더지는 머뭇머뭇 느껴지는 소리를 따라 움직였고, 감옥의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나와서 다행이다. 어서 도망 가!"


작은 두더지는 땅굴로 도망가려다 머뭇거렸습니다. 작은 쥐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죠.


"저기, 작은 쥐야. 같이 도망 가자."


작은 두더지의 제안에 작은 쥐가 쪼르르 도망가려다가 멈췄습니다.


"네가 날 꺼내줬으니까, 나도 널 도와줄게. 쥐 친구."




작은 두더지작은 쥐는 그곳에서 무사히 도망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작은 두더지작은 쥐는 안전한 굴속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있지, 작은 쥐야. 땅 위에는 인간 농부들이 많지?"


"많긴 해. 하지만 없는 데도 있어."


그 말에 작은 두더지의 호기심이 불쑥 솟아 올랐습니다.


"...땅 위의 세상은 어떻게 생겼어?"


"아주 예쁜 곳이지. 물 위에 비치는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가을이 되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드는 언덕..."


작은 두더지작은 쥐가 말한 풍경을 떠올려 보려 했습니다.


작은 쥐의 말에는 묘한 느낌이 있어서, 보지 못한 것임에도 바로 두 눈으로 본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지요.





작은 두더지는 말했습니다.


"난 위에 있을 때 빛밖에 안 보였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멋질 것 같아."


"그렇지? 그거 말고도 멋진 것들은 아주아주 많아. 난 그런 멋진 풍경들을 내 눈으로 하나하나 직접 보고 싶어. 분명히 멋진 추억으로 남을테니까."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러게. 너한테도 내가 본 것들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작은 두더지는 저 바깥의 세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방금 전 일로 톡톡히 깨달았음에도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보지 못한 세상. 빛이 가득한 세계.'


심장이 콩닥콩닥 빠르게 뛰었습니다.


"나는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모험 하고 싶어. 하지만 자주 배가 고파져서 많이 돌아다니지 못해..."


슬프게 말하는 작은 쥐에, 작은 두더지는 무언가를 떠올렸습니다.


"그럼 내가 같이 구해다 줄까?"


"정말?"


작은 쥐의 표정이 펴졌습니다.


"응. 대신에... 너는 나의 눈이 되어줘."


"눈?"


"나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땅 위의 세상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 그러니까... 네가 눈이 되어서 나에게 세상을 알려줘."




작은 두더지작은 쥐가 말하는 '세상'을 보고 싶었습니다.


...작은 두더지가 올라오자 마자 봤던 그 강렬한 빛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습니다.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해!"



작은 쥐가 웃으며 작은 두더지를 반겼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작은 두더지는 쑥쑥 자라 땅을 파고 먹이를 잡고... 채취하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더불어 작은 두더지작은 쥐와 매우 친밀해졌습니다. 매일을 붙어 있지 않으면 서로가 외로워했고, 서로를 필요로 했지요.


그들은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습니다. 서로의 행복한 추억이 쌓이고 쌓였습니다.


이런 우정은 동물들 사이에서도 매우 특별하게 보였던 건지, 매일 동물들의 사이에서는 그 둘에 대한 이야기가 끊기지 않았습니다.


...


마침내 그들은 어엿한 한 마리의 쥐두더지가 되었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그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 둘은 죽어가는 순간에서도 함께 죽어갔습니다.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눈을 감았죠.


이런 우정의 이야기는 세계 각지에 퍼져나갔고, 결국은 하늘에까지 닿았던 모양입니다.


이 세계의 신은 이 우정에 감동을 받아 그들을 인간으로 환생시켰고, 둘은 다시금 서로를 만나 추억을 쌓아 나갔습니다.


하지만 전생의 영향이 남아 있었던 건지, 한 쪽은 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둘은 서로만 있다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영원히 행복했답니다.


영원히, 영원히...